인간의 감각은 저마다 다르다. 사물을 보고, 맛을 느끼고, 손으로 만지고, 소리를 들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감각은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된다. 고유한 감각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아티스트 5인의 이야기.
DJ∙크리에이터 페기굿Peggy Good
BOUNDLESS: 소리로 감각하다

로얄 블루 워크웨어 재킷은 44만 8천 원, 팬츠는 34만 8천 원, 소. 양가죽 소재 레몬 컬러 엘라스틱 발레 플랫은 38만 원대, 엄버 포스트파스트. 실버 컬러 이어링과 볼드한 뱅글은 가격 미정, 앤아더스토리즈.
“감각은 정답을 찾아내는 것 이라기보다 아직 연결되지 않은 것들 사이에서 가능성을 발견하는 힘에 가까워요. 전통과 현대, 예술과 대중문화, 공연장과 일상 공간처럼 이미 나뉘어 있는 영역을 연결했을 때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생겨나.”
상인과 손님의 발걸음으로 북적이는 전통 시장에서 국악과 테크노가 섞인 독특한 사운드가 흘러나온다. 단발머리에 한복을 입고 디제잉 머신을 든 그녀가 신명 나게 한판 놀듯 디제잉을 시작한다. ‘Everywhere is a stage’라는 슬로건 아래 한국 전통음악과 전자음악을 믹스해 장소가 지닌 문화와 이야기를 동시대 음악으로 풀어내는 DJ이자 콘텐츠 크리에이터 페기굿(@hh__hi)이다. 첼리스트이던 그는 2024년 임실 필봉마을 굿축제에서 ‘페기굿’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무대에 섰다. 국가무형유산으로 전승되는 전통음악에 테크노 비트를 더한 퍼포먼스였다. 서로 다른 세대와 취향의 사람이 하나의 음악 안에서 함께 반응하는 모습을 보며 장르와 세대 및 공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신만의 감각으로 사운드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염천교 수제화 거리, 오래된 다방과 이발소, 과일 트럭 앞 등 예상치 못한 장소를 무대 삼아 디제잉을 결합한 과감한 퍼포먼스를 펼쳐왔다. 지난 7월에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폐회식에서 축하 무대를 선보여 우리 문화의 다채로운 매력을 알리기도 했다. “DJ는 음악과 음악을 연결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공간 안에 흐르는 리듬을 읽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현장의 미세한 변화를 읽는 감각과 서로 다른 것 사이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직감은 그의 작업을 움직이는 두 축이다. 전통과 현대, 지역 문화와 동시대 사운드, 공연장과 일상 공간처럼 이미 나뉜 것의 경계를 가볍게 넘나들며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낯선 자리에 놓아보고, 아직 연결되지 않은 것 사이에서 가능성을 발견한다. 자신이 무엇에 마음이 움직이는지 끊임없이 감각하고 선택하며, 그 선택을 자신만의 음악과 장면으로 남긴다. 그렇게 쌓인 경계를 넘나드는 직감은 어느새 페기굿이 추구하는 음악이 된다.
요가소년 한지훈
AWARE: 몸으로 감각하다

내추럴 다잉한 실크 소재의 셔츠는 62만 원, 자연스러운 색감이 돋보이는 스트레이트 팬츠는 45만 원, 엄버 포스트파스트.
“모든 호흡을 똑같이 여기지 않아요. 반복되는 동작도 매번 새롭게 바라보려고 노력 합니다. 오늘의 나를 지금의 나로 마주 보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 이것이 제가 요가를 통해 계속 연습하는 감각이에요.”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 익숙한 동작을 반복하면서도 오늘은 몸이 어디까지 움직이는지, 어느 부분에서 힘이 들고 어느 순간 호흡이 달라지는지 가만히 살핀다. 요가소년 하지훈(@yogaboy_youtube)에게 요가는 몸을 유연하게 만드는 운동을 넘어 지금 자신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수련에 가깝다. 11년 전 요가를 즐기던 아내를 따라 호기심으로 시작한 그는 미국 생활 중 누구나 요가를 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유튜브 채널 ‘요가소년’을 열었다. 초보자를 위한 요가부터 몸의 불편함을 덜어주는 움직임까지, 사람들이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귀 기울이며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어왔고, 어느덧 구독자가 51만 명에 이르렀다. 올해 5월에는 요가를 통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마음의 균형을 찾아가는 여정을 공유하는 에세이 〈수련의 말들〉을 출간했다. 그런 그가 가장 날 세우는 감각은 ‘알아차림’이다. 같은 자세라도 어제와 오늘의 몸이 다르고, 매 순간 들고 나는 호흡 역시 같지 않다.

툭 떨어지는 와이드 핏이 특징인 화이트 셔츠는 38만 8천 원, 소.
몸에서 느끼는 것을 외면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이것이 그가 매트 위에서 반복하는 수련이다. “우리 모두에겐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나 순간 같은 것이 있어요. 그런데 나 자신을 피하거나 모른 척하지 않고 찬찬히 바로 보는 것이 중요해요. 오늘의 나를 마주 보는 일을 멈추지 않는 거죠.” 그는 사람들과 함께 요가 수련을 한 뒤 저널링을 강조한다. “저널링은 지금의 나를 글로 적어보는 행위예요. 거창하지 않아도 돼요. 몸으로 느낀 것을 글로 옮기다 보면 나의 상태가 어떤지, 무엇이 필요한지가 조금 더 명확해집니다.” 몸으로 감지한 것을 흘려보내지 않고 자신의 언어로 남기는 것 역시 그에게 하나의 수련이다. 그렇게 자신에게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온 감각은 영상과 글, 수련의 언어가 되어 요가소년만의 흔적으로 남는다.
도예가 이규호
TACTILE: 손으로 감각하다

소금 염색으로 불규칙한 무늬를 만든 셔츠는 48만 원대, 플리츠가 자연스러운 핏을 완성하는 와이드 팬츠는 52만 원, 엄버 포스트파스트. 레더 피셔맨 샌들은 30만 원대, 코스.
“누구나 손끝으로 물건의 질을 느끼고 가치를 알아보는 감각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 감각을 믿고 계속 흙을 만지며,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는 공예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일을 한다고 생각해요.”
백자 위에 푸른 유약이 스며든다. 이규호 작가(@walnut_ceramic)의 백자를 보고 있으면 푸른 호수처럼 맑고 투명하며 단아한 느낌마저 든다. 서울대학교 도예과를 졸업한 그는 학부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흙을 만졌고, 도자 표면을 미세하게 깎아 질감과 색의 깊이를 만드는 샌드블라스트 기법을 적용해 백자 위에 푸른빛을 담는 그만의 작업을 선보여왔다. “공예가 여전히 가치 있게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는 연결성이에요. 손으로 흙을 빚고 물레를 차며 형태를 만든 뒤 가마에 구운 도자기를 누군가 다시 손으로 건네받아 일상에서 사용하니까요.” 그에게 손은 형태를 만드는 도구이기 전에 재료를 알아가는 감각이다. 예민하고 고집스러운 백자토는 내 뜻대로 정복하려 들수록 어긋난다. 수없이 만지고 실패하며 조금씩 그 성질을 파악해나가야 한다. 어떤 날에는 그날 만든 50개가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아 흙으로 되돌리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런 날의 경험이 손끝에 더 깊이 축적된다고 말한다. “많이 망쳐봐야 해요. 많이 망친 날의 경험치가 훨씬 크거든요.”

소금의 미네랄이 전위적 패턴을 완성한 셔츠는 85만 원, 엄버 포스트파스트.
같은 흙과 유약을 사용해도 불을 만날 때마다 백자의 표정은 미묘하게 달라진다. 그러다 아주 가끔 자신이 바라던 푸른빛과 마주하는 순간이 온다. “맑은 호수를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제 백자를 보고도 그런 맑음과 기분 좋음을 느끼면 좋겠어요. 그 색을 만나려고 계속 작업하는 것 같아요.” 재료를 알아가는 그의 관심은 더 깊은 곳을 향할 때도 있다. 언젠가는 산지에서 백자의 근간이 되는 재료를 직접 채취하고, 그 성질을 공부해 기물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한다. 완전무결한 형태에 도달하기보다 한 점의 그릇 안에 재료와 시간, 만드는 과정의 서사가 남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만드는 사람의 손에서 시작해 사용하는 사람의 손으로 이어지는 한 점의 그릇. 그 안에 시간과 실패, 재료를 알아온 감각을 남기는 것.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손의 경험이 이규호만의 푸른 백자를 만든다.
셰프 현상욱
TASTE: 맛으로 감각하다

잔잔한 체크 패턴이 돋보이는 셔츠는 58만 원, 팬츠는 62만 원, 엄버 포스트파스트. 로고가 달린 베이지 컬러 스니커즈는 가격 미정, 라코스테.
“제 입맛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지만, 요리는 결국 누군가가 먹는 거잖아요. 내 감각을 지키면서도 더 많은 사람이 맛있다고 느끼는 지점을 찾는 것, 이게 제가 추구하는 방향이에요.”
익숙한 중화요리에 낯선 재료와 조합이 더해지고, 접시 위에는 유쾌한 위트가 묻어난다. 2023년 7월 문을 연 에다마메를 이끄는 현상욱 셰프(@jacobhyun)는 일본식 중화요리를 바탕으로 자신이 오랫동안 경험해온 아시아의 맛을 자유롭게 표현한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우연히 TV에서 푸드 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을 접한 것을 계기로 요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그는 다양한 나라의 개성 넘치는 레스토랑을 거치며 경력을 쌓았다. 정식당에서 일하며 한국 파인다이닝의 태동기를 경험했고, 이후 호주의 유명 레스토랑 리호푹과 미스터 웡 등에서 일하며 지금 요리의 근간이 되는 모던 아시안의 감각을 익혔다. 이후 다츠의 헤드 셰프를 거쳐 지금은 자신이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한데 조합하는 요리 방식에 집중하고 있다. 〈흑백요리사〉 시즌 1에서 ‘간을 기가 막히게 맞춘다’는 의미의 ‘간귀’로 이름을 알린 그가 요리할 때의 기준은 의외로 단순하다. ‘내 입맛’ 그리고 ‘관심’이다. “저는 요리를 상업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가수로 치면 대중가수에 가깝죠. 다시 말하면 혼자 맛있다고 느끼는 음식에 머물지 않고,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끊임없이 살피고 경험하며 제 입맛과 대중의 입맛이 만나는 지점을 찾아가야 해요.”

오가닉 코튼에 쪽으로 자연 염색하고 자개와 뼈 소재의 단추를 더한 셔츠는 55만 원. 피스타치오 형태의 소가죽 백은 68만 원, 엄버 포스트파스트.
현상욱 셰프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식당이라면 직접 가보고, 사람들이 그곳에 모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파악한다. 맛뿐 아니라 공간과 사람, 발길이 끊이지 않는 방식까지 관심을 두고 경험한 것이 쌓여 그의 입맛을 더 단단한 기준으로 만든다. 그 관심의 끝에는 결국 사람이 있다. “집에서도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식당에서도 누군가 먹을 음식을 만들잖아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에는 사랑이나 존중 같은 감정이 들어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 그의 한 접시는 수많은 관심의 결과다. 무엇이 맛있는지,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끊임없이 궁금해한 시간이 그만의 맛을 만든다.
하플리 디렉터 이지언
FLEXIBLE: 유연하게 감각하다

꽃을 형상화한 브로치와 조형적 소매 러플이 어우러진 로브는 48만 8천 원, 자연스러운 주름이 돋보이는 슬리브리스 원피스는 39만 8천원, 소. 시스루 튤 버선은 하플리.
“제가 생각하는 유연함은 기준이 없다는 뜻이 아니에요. 무엇이 그것을 고유하게 만드는지 본질을 분명하게 바라보되,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에 경계를 두지 않는 것이죠.”
한복의 깃과 여밈, 색과 선은 익숙하지만 하플리의 옷은 전통 한복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 스카잔sukajanj과 뷔스티에, 셔츠와 트레이닝 셋업 등 현대적 옷에 한복의 깃과 고름, 문양과 소재를 자유롭게 적용하며 전통을 오늘의 패션 언어로 옮긴다. ‘한복Hanbok’의 H와 ‘적용하다’는 뜻의 Apply를 합친 이름처럼 하플리는 ‘전통의 멋을 오늘의 일상에 적용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타이다이tie-dye 특유의 색감을 담아낸 셔츠 원피스는 33만 8천 원, 소.
하플리의 이지언 디렉터(@happly_hanbokbeagle)는 지난 10년간 계속 던져온 질문이 있다. “한국적인 것은 지금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처음에는 한복이라는 옷을 통해 답을 찾아왔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이 해온 일이 단순히 한복 형태를 현대적으로 바꾸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늘 오래된 것을 들여다보면서 무엇이 이것을 고유하게 만드는지, 그리고 이것이 지금 다시 존재한다면 어떤 모습일지를 고민해왔어요.”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감각은 ‘유연함’이다. 그러나 유연하다는 것은 기준 없이 자유롭게 변한다는 뜻과는 다르다. “무엇이 그것을 고유하게 만드는지 본질은 분명하게 지니고 있으면서, 표현하는 방식에는 경계를 두지 않는 것이죠.” 한복이라고 해서 반드시 전통 소재나 깃과 고름을 그대로 사용할 필요는 없다. 본질을 이해했다면 다른 소재와 형태, 전혀 다른 쓰임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유연함은 결과물에도 적용된다. 익숙한 것의 의미를 고정하지 않고 그 안에서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 한복에서 출발한 하플리의 감각은 더 넓은 한국의 유산으로 향하며, 그것이 오늘 어떤 모습으로 다시 살아갈 수 있을지 끊임없이 묻고 있다.
*고유한 감각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아티스트 다섯 명이 입은 옷은 소SOH와 엄버 포스트파스트UMBER POSTPAST 제품이다. 이새 에프앤씨가 전개하는 브랜드로, 한국적 소재를 바탕으로 절제된 미학과 구조적 실루엣을 구현하며, 오래 지속되는 가치와 아름다움을 제안한다.